모름지기 예수는 삶의 어려운 질문이나 숱한 난경(難境) 앞에서도 뛰어난 해학의 감각을 발휘하는 촌철살인의 지혜를 보여주었다.
우리의 삶이 탐진치(貪瞋癡)에 찌들어 한없이 무거우면 결코 가볍고 자유로운 유머와 해학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을 것이다.어디에도 수사학을 배웠다는 기록이 없지만.
영생을 놓고 나누는 해학의 백미 하나 더.안식일 문제로 시비를 거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혁명적 선언을 통해 사람들의 목을 옥죄는 율법의 사슬에서 해방의 기쁨과 희망을 선사했다.다시 말하면 죽은 해학을 구사하는 이들과는 달리 예수의 해학에는 사랑과 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메시아의 위엄을 한몸에 지닌 예수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기쁜 일이 있을 때면 마땅히 미소 짓고 웃는 지극히 인간적인 예수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아닐는지.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다니! 이런 얼토당토않은 농(弄)을 하신 예수의 눈에 빛나는 해학의 불꽃을 보고 제자들은 모두 깔깔대고 웃었으리라.
그들과 하느님 나라를 두고 으밀아밀 깊은 소통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한 이가 바로 예수였다고 아랍 민담은 전해주고 있다.우리가 넘어야 할 파고(波高)가 그 어느 때보다 거칠고 높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해학』 참조)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가 제자나 민중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아주 쉽고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고 해학적인 언어로 말씀하시는 것에 놀라곤 한다.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웃음부터 팡 터뜨리는 것이 정상.
우리의 삶이 탐진치(貪瞋癡)에 찌들어 한없이 무거우면 결코 가볍고 자유로운 유머와 해학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을 것이다.사람들이 모두 더럽다고 침을 뱉거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