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인 박정희 공화당 후보와 김대중 신민당 후보가 맞붙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밥벌이하는 것과 경제학은 별로 상관이 없었다.김대중 후보의 유세장에서 봤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열차 등급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나는 그림을 좋아했다.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림으로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어떻게 돈까지 많이 가지려고 합니까.
대학 1학년 때 호남선 첫 여행길 유리창 깨진 최상급 열차에 충격 먹고 살기 힘들다 화가 꿈 포기 교련 거부로 반정부 낙인도 찍혀1971년 봄 정부가 교련 교육을 강화하자 대학가에선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얼마 뒤 신문사에서 신춘문예와 학생논문 당선자를 불러 시상식을 했다.이런 ‘호남의 기억을 소환한 건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이었다.
아버지는 지금으로 치면 하위 계급의 해양경찰이었다.3학년에 올라가면서 진로를 바꿨다.
그때부터 나는 나라가 바로 되려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아직 새마을호는 나오기 전이었지만 당시로선 최고 등급 열차였다.